골드만삭스의 변신

김 현 석 - 한국경제신문 뉴욕 특파원
김 현 석한국경제신문 뉴욕 특파원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꿈꾸는 금융회사들이 많다. 한국 정부도 글로벌 금융 허브를 육성한다며 수시로 “한국의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고 밝힌다. 1869년 독일에서 미국에 이민 온 마커스 골드만이 사위 새뮤얼 삭스와 함께 뉴욕 월스트리트에 세운 골드만삭스는 인수합병(M&A) 자문, 자기자본투자, 채권트레이딩 등 기업금융에서 오랜 기간 세계 1위를 지켜온 세계 최대 투자은행이다. 하지만 골드만삭스가 최근 확 달라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148년이 넘은 전통의 금융사지만 정보기술(IT) 개발자들을 은행원 이상으로 채용하며 정보기술(IT) 관련 핀테크 회사를 계속 인수하고 있다. 2016년부터는 소매 금융시장에도 진출했다.

클래리티 머니(Clarity Money) 모바일 화면 이미지와 마르퀴(Marquee)페이지 이미지

적극적인 핀테크 투자와 인수

골드만삭스의 변신을 대변하는 사례가 있었다. 바로 지난 15일 핀테크 관련 스타트업인 클래리티 머니(Clarity Money)를 사들인 것이다. 클래리티 머니는 2016년 4월 뉴욕에서 설립돼 인공지능(AI)을 통해 개인이 은행 계좌와 신용카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앱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사용자가 앱을 통해 대출이 가능한 금융사와 대출 한도 등을 알아볼 수 있으며 대출회사도 소개해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그동안 약 200억 달러의 예금과 약 30억 달러의 신용대출을 중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는 온라인 소매 금융 사업에 진출한 골드만삭스가 모바일 부문을 개척하는 발판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앞서 골드만삭스는 2016년 4월 GE캐피털의 온라인 은행을 인수해 자체 온라인 은행 ‘GS뱅크 닷컴’을 선보였다. 또 같은 해 10월에는 마커스(Marcus)라는 브랜드로 개인 대상 온라인 대출과 예금 서비스를 시작했다. 데이터 분석으로 대출받을 만한 사람을 골라내 이메일을 보낸 후 대출을 소개하는 회사로, 핀테크 온라인 대출 중개 스타트업인 렌딩 클럽(Lending Club), 소파이(Sofi) 등과 경쟁해왔다. 예전엔 골드만삭스 고객이 되려면 적어도 1천만 달러 정도는 가진 부자여야만 가능했다.
마커스는 대출액이 35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해 약 35만 명의 고객을 갖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클래리티 머니 앱을 쓰는 약 100만 명을 추가로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으며, 델컴퓨터의 창업자 마이클 델의 동생이자 클래리티 머니 창업자인 애덤 델도 파트너로 영입한다.
골드만삭스의 핀테크 투자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4년 11월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인 켄쇼에 1천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머신러닝 기술을 이용해 구조화되지 않은 웹 정보를 체계적 데이터로 바꾸고, 해당 데이터와 증시와의 상관관계 등을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이런 AI 기반 다양한 분석 시스템을 금융사들에 제공하는 회사다.
2016년 3월에는 퇴직연금 관리 스타트업인 어니스트달러를 인수했다. 컴퓨터 모델을 이용해 중소기업들의 퇴직연금 플랜을 세워주고 관리하는 곳이다. 또한 빅데이터 솔루션 회사 안투잇에도 투자하는 등 지난 3년간 핀테크 분야에 2억4천100만 달러를 썼다.
골드만삭스는 2016 ‘마르퀴(Marquee)’라는 금융플랫폼을 만들어 헤지펀드, 자산관리회사 등 고객사에 제공하고 있다. 금융 거래에 필요한 기술들을 오픈소스 형태의 소프트웨어로 제공한다. 마치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이 자사 서비스를 다른 애플리케이션에 연동시킬 수 있게 하는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제공하는 것과 비슷하다. API는 응용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소프트웨어다.
고객들은 이를 활용해 최적화된 앱을 만들거나, 자체 시스템과 연동시켜 시장 분석, 리스크 관리 등 투자 전략을 쉽게 결정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을 고안한 이는 실리콘밸리 출신인 골드만삭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마틴 차베스다. 그는 지난해 CFO를 맡기 전까지 최고정보책임자(CIO)를 맡았다. 차베스 CFO는 “투자은행도 데이터를 분석하는 엔진을 개발하고,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고객을 관리할 수 있다”며 “골드만삭스와 구글이 하는 일이 본질적으로 비슷하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골드만삭스가 ‘월가의 구글’이 되려고 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2015년 “골드만삭스는 IT 회사”라고 선언했다. 정장으로 복장 규정을 고집하던 골드만삭스는 작년부터 사내 엔지니어들에게 캐주얼 복장을 허용하고 있다. 구글 등 실리콘밸리 기업과의 인재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월가의 구글’이 되고자 변화를 꾀하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은 QIS(Goldman Sachs Quantitative Investment Strategies)라는 사업부를 운영한다. 이 사업부는 퀀트 기반에 AI 분석을 덧붙여 투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머신러닝을 통해 매일 수백 개의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읽어내는 등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투자 기회를 빠르게 포착하는 것이다.
골드만삭스가 최근 채용한 인원의 절반 가까이는 IT 개발직이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가 지난해 9월 골드만삭스가 게시한 2천여 개 채용 공고를 분석했더니 46%가 디지털 플랫폼 운영과 IT서비스 개발 등 기술직을 뽑기 위한 것이었다.  세계 3만5천 명 직원 중 엔지니어가 4분의  1인 9천여 명에 이른다. 미국 언론들은 골드만삭스가 ‘월가의 구글’이 되려고 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2015년 “골드만삭스는 IT 회사”라고 선언했다. 정장으로 복장 규정을 고집하던 골드만삭스는 작년부터 사내 엔지니어들에게 캐주얼 복장을 허용하고 있다. 구글 등 실리콘밸리 기업과의 인재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골드만삭스는 왜 변신하고 있을까. 현시대에는 금융사도 IT 기술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IT 기술 발달로 환경이 급변하면서 2000년 600명에 달하던 골드만삭스의 주식 매매 트레이더는 2014년 이후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자동거래 알고리즘이 이들을 쫓아낸 것이다.
골드만삭스가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이 된 건 148년의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신한 덕분이다. 어음 할인 가게로 출발한 골드만삭스는 1986년 뉴욕증시에 상장해 막대한 자금을 확보한 뒤 남보다 한 발 빠른 과감한 자기자본 투자로 세계적인 투자은행으로 발돋움했다. 증권 거래로 시작해 채권, 통화, 상품 등으로 시장을 넓혔다. 1970년대에는 적대적 M&A와 이에 대응한 백기사(White Knight) 전략을 개발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은행 지주회사로 변신했다. 국내 금융사들도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변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은행이 아니라 기술회사”라고 외치는 곳은 아직 찾기 어렵다.
스마트폰 위에 건물이 놓여 있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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