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부동산 시장에 얽힌 심리

박 원 갑 -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박 원 갑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부동산 시장은 오해와 편견이 가득한 심리적 공간이다. 시장은 단기적으로 사실보다는 억측과 풍문에 더 출렁인다.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라’는 격언은 시장이 뉴스보다 소문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는 행동은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일하기 전에 고민하는 시간보다 저질러 놓고 후회하는 시간이 더 길다. 친하면 무조건 믿으려고 한다. 사기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친숙한 사람에게 당하는 데도 말이다. 그런 생각들이 비합리적,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알면서 쉽게 바꾸지 못한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기 전에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 동네가 최고라고 생각할까

지인을 모처럼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면 사는 곳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 자신이 사는 동네가 최고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기 동네에 대해 험담이라도 하면 금세 얼굴이 굳어진다. 그런데 최고 동네로 꼽는 이유가 길이 막힘 없이 통하는 사통팔달의 교통 여건이다. 하지만 요즘은 고속도로를 비롯한 도로가 착공되고 지하철·전철이 속속 신설되면서 우리 동네만 사통팔달이라고 자랑하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무안하다. 전국에 ‘사통팔달의 고장’이 아닌 곳이 없으니 말이다.
우리 아파트가 역세권에 있다고 자랑하기에도 낯 뜨겁다. 지하철이 대거 들어서면서 서울 시내에서 1천 가구 이상 대단지 가운데 역세권이 아닌 곳은 드물다. 이제는 노선 2개가 교차하는 더블 역세권이나 3개가 지나는 트리플 역세권 정도는 되어야 자랑거리가 된다. 그런데도 자신이 사는 동네를 사통팔달, 역세권으로 자랑하는 것은 교통 혁명이라는 시대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교통 혁명으로 자기 동네만이 갖는 입지적 희소성이 많이 사라졌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우리 동네 최고’ 현상은 그 동네에 오래 살다 보니 정들어 모든 게 좋아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낯익은 대상에 호감을 느낀다. 사실 어떤 대상에 호감과 비호감의 이유를 대기 전에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적으로 이를 ‘단순 노출효과(Mere Exposure Effect)’라고 한다. 브랜드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상품 품질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덜컥 고른다거나 직장인은 자신이 속한 회사 주식을 매입하거나, 지역 주민들이 그 지역에 본사나 공장이 있는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해당 회사의 정보를 쉽게 취득할 수 있는 점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잘 아는 회사가 좋은 주식이라는 선입견이 더 큰 이유다.
그러나 친숙하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자칫 판단 착오를 불러올 수 있다. 익숙함에 이끌려 투자할 경우 오히려 실패를 낳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익숙한 것은 좋은 것을 넘어 안전하다고 생각하려는 친근성 편향까지 나타난다. 익숙한 지역을 일종의 ‘안전지대(Comfort Zone)’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 사람은 집 주변을 안전지대로 여기며 부동산 투자 범위 역시 집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부산 사람들은 대체로 부산 시내나 그 인근인 울산, 양산, 김해 부근에 아파트나 땅을 산다. 강원도나 제주도 사람들도 부동산을 투자할 때 그 동네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투자는 부동산을 넓은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주관적인 선호도에 따라 결정하기 쉽고 그만큼 투자의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익숙하니 좋고 안전하다, 그러니 투자한다’는 방식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

판교 디지털 밸리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황경민(가명.40) 씨는 요즘 집 사고 파는 문제로 고민이 많다. 황 씨는 지금 판교신도시 아파트에 전세로 산다. 물론 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비슷한 크기의 아파트가 있다. 그가 판교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은 판교 IT 회사 경력사원으로 채용됐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집은 전세로 놓고 다른 집에 전세 사는 국내 83만 가구 중 한 가구인 셈이다.
황 씨는 목동 아파트를 팔고 판교 아파트를 사고 싶다. 내 집에서 편히 사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아내가 “목동 아파트는 언젠가 재건축이 될 텐데, 그 아파트를 팔아 판교로 옮길 필요가 있느냐”고 제동을 걸었다. 그는 아내에게 “재건축이 어느 세월에 되겠느냐”고 말했지만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 아내의 말을 다시 들어보니 자신도 목동 아파트를 팔아 판교아파트로 옮겼다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끝내 황 씨 부부는 결정을 못 내리고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황 씨 부부의 행동은 나중에 후회를 최소화하고자 일부러 효용이 적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행동으로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다. 번듯한 내 집을 놔두고 남의 집에 전세 사는 사람들은 번거롭고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2년마다 새로 전셋집 마련에 드는 중개수수료와 세입자를 구하는 데 드는 중개수수료까지 따져 보면 내 집에서 편히 사는 게 주거 효용이 훨씬 높을 것이다. 하지만 황 씨 부부는 후회 걱정에 최선의 주거 효용을 선택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은 심리학적으로 단기간에는 행동한 일을, 장기간에는 행동하지 않은 일을 후회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황 씨 부부는 어떻게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익숙함에 이끌려 투자할 경우 오히려 실패를 낳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서 익숙한 것은 좋은 것을 넘어 안전하다고 생각하려는 친근성 편향까지 나타난다. 익숙한 지역을 일종의 ‘안전지대(Comfort Zone)’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집 주변을 안전지대로 여긴다. 부동산 투자 범위 역시 집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모래 시계 이미지

집을 잘 샀는지 확인받고 싶은 심리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을 살 때 의외로 충동구매를 많이 한다. 평소 꼼꼼하던 습관도 부동산중개업소나 모델하우스에만 가면 무너진다. 10억~20억 원대의 집도 누군가의 한두 마디 솔깃한 말에 덜컥 계약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 경험으로 봐도 집 살 때보다 차 살 때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차는 지금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충분히 고를 기회가 많기에 느긋해진다. 하지만 부동산은 금세 오를 것 착각과 이번에 사지 않으면 좋은 기회를 놓칠 것 같은 조급증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순식간에 부동산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하루 이틀 지나고 나서야 이것저것 따지기 시작한다. 투자 결정 이전의 고민 기간보다 그 이후 기간이 더 길다. 계약하기 전에 보이지 않았던 내용이 그제야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계약한 뒤에 자신이 부동산 투자를 잘 한 것인지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주식은 사더라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욕구는 별로 없다. 하지만 집은 산 뒤 친인척이나 동창생에게 전화를 걸어 “집을 잘 사지 않았느냐”며 확인하려고 한다. 이 질문은 처음부터 상대방으로부터 맞장구를 쳐달라는 유도성 질문이라는 얘기다. 그런 만큼 자신이 기대한 칭찬성 답변은 접수하고 그 반대의 답변은 무시해버린다. 이미 집을 사버린 상황이므로 엎질러진 물처럼 다시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집을 사면 나도 모르게 동네 소식에 민감해진다. 매입한 아파트나 그 주변 지역에 혹시 호재가 없는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예전에는 흘려들었던 지하철 노선 개통이나 도서관, 헬스클럽 신축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운다. 사소한 소식이라도 집값이 오르는 호재로 보인다. 나쁜 소식은 애써 무시한다. 그리고 부동산 시장을 부정적으로 보던 사람도 이제는 생각들이 조금씩 달라진다. 다른 동네 집값이 하락하더라도 우리 아파트는 주변에 개발 재료가 많거나 실수요가 두터워 끄떡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집 팔아도 불안, 돈 갖고 있어도 불안

경기도 하남시에 사는 홍수진(가명·45) 씨는 집을 팔고 나니 손이 떨린다고 했다. 집 판 돈을 은행 통장에 넣어두고 있으려니 불안하다, 금세 집값이 다시 올라갈 것 같다, 다른 동네 집값이 꿈틀거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가 집을 잘못 판 것 같다, 물가가 오른다는 데 다시 부동산을 사둬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주식 투자라도 해서 수익을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등등 어떻게라도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이처럼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 무슨 일이든 저질러야 하는 충동을 느낀다. 이런 현상을 ‘행동 편향(Action Bias)’이라고 한다. 부동산 시장이든 주식 시장이든 조급증이 실패를 부른다. 요즘처럼 고점 논란이 심할 때 실패로 가는 지름길은 쓸데없이 서두르는 일이다. 어떤 때는 쉬는 것도 투자라는 격언을 새겨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불확실성

“너희 둘,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와” 중·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의 화난 이 한마디는 학생들을 온종일 불안감에 시달리게 했다.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혼내지 않고 나중을 기약했다. 조회 시간에 그런 말을 들으면 학생들은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점심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방과 후 교무실로 가면 선생님은 온화한 표정으로 앞으로 잘하라는 단순한 훈계를 하시곤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벌은 처벌 유예를 통해 인간이 두려워하는 불확실성에 길게 노출시키는 방법이다. 방법적으로 신사적이었지만 학생들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안겨주는 상당한 벌이었다. 사실 회초리를 맞기 이전에 막연한 두려움은 견디기 힘들다. 차라리 매를 맞고 나면 마음이 편하다. 유럽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이를 ‘페따 꼼쁠리(Fait Accompli, 기정사실)현상’이라고 했다. 아무리 큰 악재도 이미 기정사실화하면 감당할 수 있는 소식이 된다는 것이다. 페따 꼼쁠리 현상은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때로는 시장에서 호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주식 시장에서 전쟁이 터지고 나서 오히려 주가가 오르는 것이 그 예이다.
사실 시장은 위험보다도 불확실성을 더 두려워한다. 위험은 어느 정도 확률이 알려졌지만, 불확실성은 그 확률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위험은 어느 정도 내가 노력으로 통제를 할 수 있지만 불확실성은 통제 자체가 내 영역 밖이다. 그래서 불확실성은 때로는 공포로 다가온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불확실성은 독이 될 수밖에 없다. 비리와 투기도 불확실성을 먹고 자란다. 정부는 누구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불확실성을 제거해서 시야를 맑게 해주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야 시장 참여자들이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집 모형 옆에 동전을 쌓은 탑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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