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닉은 본래 프랑스에서 음식을 각자 가져와 실내에서 함께 나눠 먹는 귀족의 식사 모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와 별도로 야외에서 식사하는 풍습은 사냥할 때 밖에서 음식을 먹은 데서 유래했다. 이런 관습들이 합쳐져 18세기 중엽 공원이나 정원에서 음식을 먹으며 즐기는 향락문화가 귀족들 사이에서 형성됐다.
귀족의 풍습이었던 야외 식사는 19세기에 시민 부르주아 계층이 성장하면서 흔한 일상생활 중의 하나가 됐다. 피크닉이라는 말은 음식을 가지고 야외에 나가 먹고 즐기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여가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은 자주 모여 피크닉을 즐겼다. 진보적인 화가들은 당대 사람들의 변화한 생활상을 기록하는 것이 화가의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피크닉과 같은 일상은 그들에게 좋은 소재가 됐다.
피크닉을 다룬 그림은 많지만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만큼 유명한 그림이 또 있을까. 이 그림은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스캔들의 중심에 휘말렸다. 바로 숲속의 피크닉 자리에 남자들과 함께 알몸으로 앉아있는 여자 때문이었다. 서양미술에서 여성 누드는 생소한 것이 아닌데다 자연 속에 등장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신화의 비너스나 에덴의 이브처럼 오래전 과거의 상상 속의 인물인 반면, 마네가 그린 여성은 당시 파리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유명 모델이었다.
또한 같이 있는 남자 중 정장 차림을 한 사람은 마네의 동생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마네의 친구였다. 말하자면 마네는 동료 여성을 벌거벗겨 서로 잘 아는 남자들 사이에 배치한 것이다. 이들이 가져온 음식은 화면 맨 아래쪽에, 여자가 벗어놓은 옷가지와 함께 흩어져 있다. 도대체 마네는 왜 이처럼 수상한 그림을 그렸을까?
우선 정장한 남자들과 여성 누드가 같이 있는 장면은 아주 새로운 형식이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 <전원음악제>에서 전례를 찾을 수 있다. 베네치아에서 제작된 <전원음악제>는 악사와 뮤즈들이 전원에서 가무를 즐기는 목가적 장면을 보여준다. 여기서도 남자들은 당시의 의상을 입고 여자는 옷을 벗은 채 풀밭에 함께 앉아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실제가 아니라 꿈에서나 있을 법한 낙원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시와 음악을 의인화해 표현한 것이다. 마네가 르네상스 그림의 형식을 따른 것은 미술사의 고전적 전통을 참조하면서 그 관례를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전원의 향연을 상기시키지만 목가적인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그는 파리 부르주아들의 여가생활을 사실대로 기록하면서 갑자기 여성을 나체로 등장시켜 당혹스럽게 했다. 그녀의 허연 육체와 당당한 시선은 인간이 껍데기를 벗으면 그저 동물처럼 살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마네의 그림에서는 문학과 예술에 나오는 공상의 세계와 일상의 물질적 현실이 교차한다. 마네는 인간·자연·신화가 어우러진 이상적인 조화를 깨뜨리고 일부러 기묘한 배치와 부조화를 창조했다. 당시 부르주아들이 좋아하는 점잖음·정숙함·세련됨의 배후에는 무성한 수목과 벌거벗은 육체와 흩어진 음식이 가리키듯 투박하고 음탕하고 퇴폐적인 세계가 공존한다는 것을 여실히 들춰낸 것이다.

2년 후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도 마네처럼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그렸다. 모네의 그림은 원래 가로 6미터, 세로 4미터에 이르는 대작이었는데 훼손돼 현재 일부분만 남아있다. 작품의 크기만으로도 그가 이 그림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큰 작품은 예전에는 기념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나 종교적 내용을 주로 다뤘다. 그러나 19세기 중엽 시민의식이 성장하고 물질문화가 발달하면서 일반인의 평범한 삶의 단편이 예술의 중요한 화제로 떠올랐다. 민중의 삶을 그린 대형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런 시도를 처음 한 사람은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였다. 쿠르베는 비록 하찮게 보이는 일상이라도 역사의 기념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마찬가지로 모네도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서 일상의 가치를 큰 화폭에 담아 근대생활의 기념비로 삼고자 했다. 지금 남아있는 작품의 중앙 부분에 검은 양복을 입고 앉은 사나이가 바로 쿠르베다. 이것은 모네가 쿠르베와 뜻을 같이한다는 암시가 아닐까?
모네의 그림은 야외의 풀밭에 돗자리처럼 넓은 천을 깔아놓고 사람들이 둘러앉거나 서서 휴식과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보여준다. 마네의 그림과 비슷하지만 모네는 황당한 누드를 배치하거나 꿈같은 낙원을 연상시키지 않는다. 그보다 마치 화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어느 날의 평범한 여가시간을 그린 듯하다.
그런데 모네의 그림은 이전 그림들보다 확실히 밝고 화사한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바닥에 펼친 흰 천은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으며 그림의 초점을 이룬다. 햇빛이 직접 닿아 눈이 시리도록 하얀 부분과 주위의 그림자가 깔린 부분이 선명하게 구분된다. 이런 빛의 작용은 그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쿠르베의 검은 양복은 어깨와 팔의 주름 부분이 빛을 받아 아주 밝은 색으로 변했다. 사물의 색이란 고유한 것이 아니라 빛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하듯이. 모네는 피크닉 장면에서 당시 유행하던 여가 풍습과 함께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의 효과를 눈에 보이는 대로 포착했다. 근대생활의 단면과 태양빛의 감각적 작용을 표현한 것으로 이 두 가지는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이 추구한 제일 중요한 목표였다. 그들이 피크닉 장면을 자주 그린 것은 그 목표를 표현하는 데 아주 적합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는 1874년 첫 전시를 기점으로 1886년까지 8회의 전시회를 하며 활발히 전개됐다. 1886년 인상주의 마지막 전시회에는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가 출품돼 주목을 받았다. 쇠라는 맑은 휴일 오후 파리의 센 강에 있는 섬 그랑자트에 모여든 피크닉 인파를 그렸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많은 사람이 있는데도 소란스럽지 않고 대부분 그 자리에 정지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물은 두세 명씩 그룹을 이루고 있지만 전혀 대화하지 않으며 각자 자기 생각과 행동에만 몰입해 있다. 마치 군중에 섞여서도 고립된 근대인의 고독한 내면을 보는 것 같다. 또한 마네나 모네가 주변 인물의 초상을 그린 데 비해 쇠라는 특정 개인을 묘사하기보다 도시 사람들의 계층별 유형을 제시하고자 했다. 가장 눈에 띄는 화면 맨 오른쪽 커플은 부르주아 남성과 고급 창부를 나타낸다.
그녀가 데리고 있는 원숭이가 매춘을 뜻하기 때문이다. 화면 맨 왼쪽에서 붉은 옷을 입고 혼자 낚싯대를 드리운 여자도 남자를 낚으려는 매춘부로 짐작된다. 또 그 아래 있는 세 명의 인물 중 실크햇과 정장 차림에 지팡이를 든 남자는 부르주아 계층을, 민소매 셔츠를 입고 운동모자를 쓴 남자는 노동자 계층을 뜻한다. 당시 파리에서는 사회계층이 부르주아와 노동자로 점차 뚜렷이 구분되고 있었으며 그 사이에서 매춘부라는 여성 노동자 직업군이 발달해 남성 부르주아와 공생하고 있었다. 쇠라의 그림이 처음엔 가벼워 보이지만 자꾸 볼수록 경직되고 무거운 느낌이 드는 것은 그러한 사회의 무게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쇠라의 작품에서 또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무수한 색점들로 뒤덮인 화면이다. 쇠라는 빛의 작용을 그린 인상주의 화풍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빛의 효과를 단순히 직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빛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체계화하려 했다.
노력 끝에 쇠라는 사물의 분명한 형태를 되살리고 색채를 가능한 한 원색에 가까운 순수한 색으로 작게 분할해 점으로 병치하는 기법을 고안했다. ‘분할주의’라고 불린 이 방법은 가령 주황색을 표현할 때 빨강과 노랑 물감을 직접 섞지 않고 각각 작은 점으로 나눠 교대로 찍으면 멀리서 봤을 때 주황색으로 보이는 이치를 실행한 것이다. 색의 혼합이 팔레트가 아닌 우리 눈의 망막에서 일어나게 하는 것으로, 눈의 착시효과를 이용한 수학적·생물학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쇠라의 작품은 인상주의를 계승했지만 그 단점을 거부하고 철저히 보완해 새로운 양식을 창안했다. 그런 점에서 쇠라의 화풍은 ‘신인상주의’로 불리게 된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된 19세기 후반, 야외는 시민들이 복잡한 일상을 잠시 잊고 느긋하게 휴식하며 꿈 속 이상향을 느끼게 해주는 가벼운 안식처였다. 근대 화가들이 그린 피크닉 장면에는 시민의 다양한 유형들이 살아있고 그들의 이상과 현실이 담겨 있다. 피크닉이라는 테마는 화가들이 자연과 인간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예술기법을 창안하는 데 훌륭한 바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