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책금리가 3월 초 0.25% 올랐다. 나라마다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정책금리는 각 나라의 경제 사정에 따라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니 이번 인상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미국의 금리 인상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미국 경제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2008년 주택금융시장의 문제로 미국이 위기에 빠지자 세계 경제도 뒤따랐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번 인상이 주목받는 이유는 아직도 미국 금리가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앞으로 추가 인상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2008년 말 미국의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0~0.25%로 내려간 미국의 정책금리는 2015년 말까지 0% 수준에 머물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얼어붙었던 미국 경제를 해동하는 데 미국 사상 초유의 0% 금리만으로는 부족하자 Fed가 직접 나서서 시장에서 국채를 대량 매입해 돈을 푸는 양적 완화까지 진행했다. 점차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며 2014년 말 양적 완화가 종식되고, 정책금리가 0% 궤도를 벗어나는 것이 다음 순서였다.

양적 완화 종식 직후인 2015년 초부터 정책금리가 0% 궤도를 벗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Fed의 금리 결정에 물가와 함께 고용 상황이 중요한데 그사이 고용은 뚜렷이 회복됐다. 2010년 거의 10% 가까이 치솟았던 실업률이 점차 개선돼 2014년에는 6%, 이듬해에는 5%대로 낮아졌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고용 동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진 경기불황(The Great Recession)이 얼마나 충격이 컸는가를 알 수 있다. 미국의 전체 고용자 수는 2007년 1만 4천605만 명이었다. 그런데 위기 직후 급감하며 2009년에는 1만 3천906만 명으로 낮아졌다. 그 이후 회복세를 보이며 2014년에는 드디어 1만 4천631만 명으로 늘어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오바마 행정부의 마지막 해인 2016년에는 1만 5천144만 명을 기록했다.
2008년 이후의 극심한 불경기에 혼이 난 Fed는 뚜렷한 고용사정 개선에도 불구하고 회복세가 확실한지 두 번, 세 번 확인하려고 금리 인상을 미뤘다. 그러다 2015년 말에 드디어 첫 번째로 0.25% 인상했다. 2016년에도 후속 인상이 몇 차례 이어지리라는 기대와 달리 지난해 12월 한차례 0.25%의 인상이 이루어졌다.
Fed는 연간 소비자 물가증가율, 혹은 인플레이션이 2%로 유지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2009~2010년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 값을 보이자 이런 추세가 일본에서처럼 장기화되어 디플레이션(부(負)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급증하기도 했다. 2015년 이후의 물가 증가세가 떨어지며 디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살렸지만 최근 연 2% 정도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7년의 고용과 임금 자료가 계속 양호해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아 연중 2~3회 추가 인상이 예상되고 있다.

온 세계가 Fed의 정책금리 결정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금융시장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식시장 월가(Wall Street)의 높은 지명도는 설명이 필요 없고, 미 달러화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축통화이므로 미국의 금리는 달러화의 대차(貸借) 가격을 결정한다.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자금은 마치 배추나 반도체와 같은 표준화된 물건과 같다 할 수 있다. 나라 간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자유롭다면 국제적으로 물건 값은 비슷해진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제일 큰 도매시장의 영향력이 클 것이고 미국이 그런 큰 도매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에서 보듯이 미국의 단기금리가 극단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며 한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의 초저금리를 연출했다.
이번 인상의 잠재적 영향력을 더 키우는 것은 올해 초 출범한 미국 새 행정부의 재정정책이다. 세금을 낮추면서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국방비 지출을 늘리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정책 기조이다. 정부의 수입은 줄고 지출이 늘면 국채를 발행해 투자자로부터 돈을 빌려야 한다. 이런 자금 수요가 커지면 Fed가 결정하는 단기 정책금리와도 성격이 좀 다른 장기 시중금리가 오르게 되면서 장·단기금리가 모두 오르는 추세가 가시화될 것이다. 단기 정책금리의 인상은 대체로 시차를 두고 장기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의 금리가 올라가면 국제적으로 자금이 미국으로 흐른다. 금융시장이 더 개방된 나라일수록, 자본 이동에 따른 환율 변동에 더 민감한 나라일수록 미국 금리 상승이 국내 금리 상승의 압력 요인이 된다. 만약 국내 금리를 미국 금리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운용하고 싶으면 크게 두 가지 대응책이 있다. 하나는 자본 이동을 제한해서 금리차로 자본유출입이 발생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완전한 변동환율제를 시행해서 자본유출입에 따라 환율이 필요한 만큼 변동하게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국내 금리는 자국의 사정만을 고려해 결정할 수 있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와 일본이 후자의 경우이다. 선진국은 명실상부한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고, 자본유출입이 대체로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미국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사정에 맞는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과 일본은행은 아직도 각각 양적 완화를 시행하고 있고,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신흥국 중에는 중국이 전자의 방식을 따른다. 자본의 흐름을 통제할 뿐 아니라 환율도 정책당국의 영향력이 큰 바스켓제도로 결정한다. 대부분 주요 신흥국은 자본유출입을 허용하고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 정책당국의 개입이 이루어진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양적 완화로 국제금융시장의 유동성이 넘쳐나자 이 자금이 대거 신흥국으로 유입되었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이제는 그때와 반대의 흐름이 걱정인 형국이다.

아래의 <그림 1>은 2002년 이후의 미국과 한국의 장·단기금리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2008년의 변동 폭이 워낙 커 그 이외 기간의 추세를 보기가 쉽지 않지만 대체로 미국의 금리 변화가 국내 금리를 선행했다. 단기금리는 정책금리를 반영한다. 2008년까지 미국의 시중금리는 약 4~5% 수준이었는데 국내 금리가 미국 금리보다 높았다. 이때에도 자본 유입이 진행됐다. 2008년 직후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일시에 크게 빠졌으나 채권시장 투자는 지속되었고, 점차 주식시장에도 다시 들어왔다. 선진국 양적 완화로 풍부해진 자금이 국내로 유입된 것이다.
3월의 미국 정책금리 0.25% 인상으로 이제는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가 1.25%로 같아졌다. Fed는 추가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연 중 미국의 금리가 한국의 금리보다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한·미 정책 금리가 역전되었던 적이 없었다. 그렇게 되면 자본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

해외로부터의 자본 유입은 국내 자금 사정을 풍부하게 하며 시중금리를 낮추고 부채 증가에 기여했다. 지난 정부의 경제팀은 2014년 가계부채 총량 증가를 크게 문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택시장 활성화를 통해 경기부양을 꾀했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낮추며 거들었다. 그런데 기대하던 경기 활성화는 지지부진했고 대신 가계 빚 증가라는 부작용만 낳았다.
2014년 이후 금리하락과 가계부채는 증가세 상승이 뚜렷한데 이 시점이 바로 박근혜 정부의 당시 새 경제팀이 ‘빚내서 집 사기’ 부동산 진작책을 시작한 때이다. 주택담보대출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지난해 문제로 주목받았던 집단대출이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면 빚이 느는 것은 특별히 걱정할 일이 아니다. 소득이 안정된 일자리를 얻은 젊은 사람이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가구소득 데이터를 보면 소득이 높은 계층이 부채도 많다. 이렇듯이 경제 전체로도 소득이 적절히 증가하고 있으면 가계부채가 느는 것이 그리 큰 걱정이 아니다. 그런데 소득증가세가 부채 증가세를 계속 밑돌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금융사별, 종류별 가계부채의 구성은 2016년 말 잔액 기준으로 예금은행에서 제일 큰 항목이 주택담보대출이다. 금리 인상의 여파를 생각할 때 부채의 구성이 중요하다. 단순한 예를 보자. 모든 부채의 만기가 많이 남았고 고정금리라고 한다면 신규 대출 외에는 금리가 당분간 올라도 그 영향이 크지 않다. 이와 정반대로 모든 부채가 만기가 짧고 변동금리라고 한다면 금리 인상은 큰일이다. 왜냐하면 단기간 내에 대출을 갱신할 때 높은 새 금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책당국이 그동안 주택담보대출의 만기를 늘리고 고정금리 비중을 높이려 애써오고 있다.
가계부채의 구조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2015년에는 약 32조 원 상당의 변동금리, 일시상환 조건의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 분할상환 상품으로 전환하는 안심대출전환을 실시했다. 변동금리와 함께 기존 주택담보대출이 초기 거치기간이 있었던 것을 일찍부터 원리금을 분할해서 상환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것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정책당국의 노력은 계속되어오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에서 고정금리 대출의 비중은 2010년 말 1%도 미치지 못했으나 그간 정책당국의 독려로 최근 35%를 넘어섰다. 그런데 여기서 만기까지 유지되는 순수 고정금리의 비중은 아직도 크지 않고 5년 동안 고정되었다가 그 후 변동금리로 바뀌는 혼합형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리 상승이 예상되는 기간에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높아 다행스럽다.
2015년 12월에 미국의 금리가 근 십 년 만에 인상되면서 이미 국내에서도 지난해 초부터 주택담보대출이 주도하는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정책당국은 대출 억제에 나서기 시작했고 분양·재건축 아파트의 중도금 납부에 이용되는 집단대출이 주된 타깃으로 지목됐다. 2016년 6월 말 집단대출 잔액은 약 122조억 원으로 2015년 말보다 11조 6천억 원 늘었다. 이는 상반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증가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규모였다. 그 이후 현격히 줄고 있으나 기타대출, 제2금융권 대출 등으로 증가세가 옮겨가며 가계대출 증가세는 꺾이지 않았다.

올해 중 금리 인상을 예상해 미리 자금을 확보하려는 일시적 수요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리가 인상되면 주택담보대출 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에 수요가 줄게 마련이다. 그런데 2015년 이후 신규 아파트 공급은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 만약 수요가 크게 위축되면 주택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불거진 대통령 탄핵이 올 3월에 마무리되면서 대선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 표라도 더 얻으려는 정치인들이 선심성 공약에 집중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정치권의 대책을 보면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졌는지 궁금한 생각이 든다. 주요 내용의 하나가 큰 폭의 부채 탕감이다. 물론 회수불가능한 소액부채는 탕감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우선순위를 생각하면 현 상황에서 걱정스러운 것은 신용불량자 직전의 한계상황에 처한 채무자 가계들이다. 이들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실시해서 추가 신용불량자가 늘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다.
아울러 현시점에서 가계 빚 총량 감축을 밀어붙이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구심이 든다.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정책까지 이렇게 급하게 주택시장을 압박하면 지나친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주택가격이 급락하면 다시 이를 살리기 위한 부양책이 동원되면서 지난 15년간 되풀이되었던 냉탕·온탕 정책 급선회가 재현되며 정책의 신뢰가 추락하는 모습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의 경우 미국 금리 인상과 같은 외부충격을 완화하는 방법으로 한국은행이 중기적 관점에서 채택한 물가상승률 2% 목표를 좀 더 높게 잡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나라가 목표물가상승률을 설정하고 있지만 왜 꼭 2%인가는 확실치 않다. 특히 지난 10년 가까이 세계 경제 부진이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어려움이 컸기 때문에 외부 충격을 완충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 의미가 있다. 대신 그 목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물가상승이 목표를 넘어설 때 정책금리를 주저 없이 인상하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금리 인상 추세는 이제 시작되었고, 지난 십 년 넘게 지속되어온 장기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앞으로 국내 금리의 향방도 추세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가계부채 총량과 더불어 주택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 필자의 글은 전국은행연합회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