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 감상하는 서양의 명화] 성모자, 신성으로 안내하는 자애로운 모성 > Vol 745 April 2016 > 금융웹진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WEBZINE 메인으로

테마로 감상하는 서양의 명화 : 성모자, 신성으로 안내하는 자애로운 모성

성모자상은 언제부터 제작되기 시작했을까? 그 기원은 2세기 중엽 로마의 카타콤 벽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성모자가 본격적으로 그려진 것은 기독교가 공인된 후 100년 이상 시간이 지나 성모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라고 규정한 다음부터다. 이후 마리아에 대한 숭배가 확산되고 마리아의 다양한 모습이 기독교 미술에 주제로 등장하게 됐다.
중세 초기에 마리아의 이미지는 이콘(icon)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이콘이란 예배나 기도의 대상이 되는 성인의 이미지를 뜻한다. 성모자를 그린 것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콘은 6세기 말 시나이산의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제작한 <옥좌의 성모자>다. 그 그림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가 천사와 성인들에 둘러싸여 옥좌에 앉아 있다. 신의 어머니로서 여왕 같은 권위와 위엄을 지닌 <옥좌의 성모자>는 중세에 성모자상의 한 유형을 형성하며 크게 발전했다.
그 외에도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자상은 <길을 인도하는 성모>, <겸손한 마리아>, <젖먹이는 마리아> 등 다양한 유형으로 발달했다. 그중 <길을 인도하는 성모> 즉 ‘호데게트리아(hodegetria)’라는 형식이 가장 흔히 제작됐다. 이 유형은 본래 성모 마리아가 왼팔에 아기 예수를 안고 오른손으로 아기를 가리키며 서 있는 도상을 말한다. 어머니의 팔에 안긴 아기 예수는 작은 손가락 세 개를 펴 축복을 내린다. 호데게트리아는 원래 전신상이었지만 비잔틴 이콘에 계승되면서부터는 주로 반신상으로 묘사됐다. 그 다양한 사본이 중세 내내 널리 퍼져 13세기에는 절정에 다다랐다.
호데게트리아 유형에서 아기 예수가 축복을 내리거나 성모가 예수를 가리키는 손동작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점차 사라지게 된다. 현실세계와 인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인간으로서 마리아와 예수의 특성이 중요시됐기 때문이다. 성모자상에서 신학적 의미를 직접 강조하기보다는 인간적인 자애로운 어머니를 표현함으로써 보는 이가 현실에서부터 신성한 차원으로 상승하도록 유도한다.

그러한 성모자 그림 중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모자>가 있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성모자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다. 1512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삼촌인 식스투스 4세의 장례용으로 주문한 것인데, 피아첸차 시의 산 시스토 성당 제단화로 봉헌됐다. 그 성당의 이름에서 ‘시스니타 성모자’라는 현재의 이름이 유래했다. 그림 속 성모는 오른팔에 아기를 안고 구름 위에 서 있다. 신성한 언어는 오른손으로 표시해야 하는데 이제 손동작을 하지 않으므로 자유로워진 오른팔로 소중한 아기를 감싸고 왼손으로도 받치고 있다. 그런데 처녀처럼 앳된 마리아의 얼굴은 순수하고 겸손해 보이지만 눈빛에 어딘가 근심이 서려 있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 예수의 맑은 눈에서도 뭔가 두려운 빛이 감도는 것을 놓칠 수 없다. 이러한 요소는 전통적으로 성모자상에 표현되는 예수의 수난에 대한 암시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라파엘로는 암시를 위해 모자 간 친밀한 분위기를 깨지 않고 아주 미세한 심리 묘사로 대신했다. 또한 마리아는 한쪽 무릎을 약간 굽히고 서 있어 마치 움직이는 것 같다. 게다가 미풍에 날리는 베일과 옷자락이 더욱 생동감을 부여하며 인물의 부피감을 높인다. 그로 인해 성모는 나약하지 않고 당당하며 진취적으로 보인다. 성모가 서 있는 곳은 두 개의 커튼이 열어놓은 구름 위 신성한 공간으로, 수많은 아기천사들의 얼굴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나 성모자를 찬양한다. 라파엘로는 환상과 현실을 적절히 조화시켜 신성과 세속이 오묘하게 결합된 완벽한 종교화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르네상스 때부터 종교화는 예배나 신앙심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종종 제작자나 후원자의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 그려지곤 했다. 라파엘로의 그림에는 성모자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성 식스투스(교황 식스투스 2세)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그는 이 그림을 주문한 율리우스 2세가 속한 로베레 가문의 수호성인이다. 그의 아래에는 교황의 삼중관이 놓여 있는데 도토리 모양이 로베레 가문을 상징한다. 화면 오른쪽에는 피아첸차 시의 수호자인 성녀 바르바라가 앉아 있다. 그녀는 탑에 갇혔다가 순교했으므로 뒤에 멀리 탑이 보인다. 피아첸차 시는 로베레 가문과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도시였다. 따라서 이 그림은 성모자와 성인, 성녀를 연결해 후원자인 율리우스 2세 가문의 위용을 높이려는 의도를 나타낸다. 율리우스 2세는 스스로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에 견줄 만큼 정치적 야심이 대단했으며 군사적 원정도 자주 감행했다. 또한 고대예술에 관심이 높아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기용해 대규모 예술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게 <시스티나 성모자>에는 숭상받는 종교적 이미지를 빌어 교황의 업적과 가문을 기념하고 피아첸차 시민의 환심을 얻으려는 정치적 목적이 숨어 있다.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모자>는 300여 년이 지나 프랑스에서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라는 화가를 만나 또 다른 목적으로 새롭게 각색됐다. 1820년, 프랑스 정부에서는 앵그르에게 몽토방 시의 대성당 제단화로 사용할 그림을 주문했는데 성모승천일을 기념해 루이 13세가 성모에게 봉헌하는 의미를 담아달라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앵그르는 성모승천 장면 대신 성모자를 그리려 마음먹었다. 존경해 마지않는 대선배 화가 라파엘로의 그림을 차용하기로 한 것이다. 앵그르는 루이 13세가 환상 속에서 성모자를 만나는 장면을 구상하고 화폭을 상·하 두 부분으로 분리했다. 윗부분은 환상의 장면으로, <시스티나 성모자>를 따라 초록빛 커튼으로 천상의 공간을 개방하고 중앙의 구름 위 높은 곳에 성모와 아기 예수가 자리 잡게 했다. 또한 성모자 아래 양쪽에 천사들을 대칭으로 배치해 신성한 영역을 확실히 구분하면서 삼각형의 안정된 구성을 유지하도록 했다. 그림의 아랫부분은 현실의 장면이다. 대관식 복장을 한 루이 13세가 꿇어앉아 성모자에게 왕관과 홀을 들어 올리며 신앙과 헌신을 맹세한다. 왕은 곧 국가이므로 그의 맹세는 개인을 넘어 프랑스를 성모자에게 바친다는 의미가 된다. 뒤집어 말하면 국왕과 프랑스가 성모자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19세기에 왜 하필 지나간 17세기의 왕 루이 13세를 그려야 했을까? 여기에는 강한 정치적 목적이 있다.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실각 후 왕정으로 돌아가 있었��. 루이 18세가 등극함으로써 대혁명으로 퇴출됐던 부르봉가에서 다시 왕위를 차지한 것이다. 당국에서는 부르봉 가문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방책으로 선왕 루이 13세에 대한 역사적 일화를 홍보하기로 했다. 1638년 루이 13세는 성모 마리아에게 프랑스를 봉헌한 바 있는데 그 결과 결혼 23년 만에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훗날 ‘태양왕’으로 불리며 부르봉가의 절대주의 왕권을 확립한 루이 14세다.
앵그르는 종교화 속에 역사적 내용을 삽입함으로써 종교와 정치를 한데 엮었다. 그의 그림은 당대의 정권이 성모 마리아가 기적을 베푼 왕통을 계승했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국민에게 왕에 대한 충성심을 장려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 작품이 1824년 프랑스 살롱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앵그르는 신고전주의 대표 화가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으며 그해 루이 18세를 계승한 샤를 10세는 매우 흡족해하며 앵그르에게 최고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화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이 그림은 신앙심이나 애국심보다 예술에 대한 생각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앵그르는 라파엘로의 작품을 차용함으로써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르네상스 회화를 찬미하는 것이다. 그림의 윗부분이 라파엘로의 세계라면 아랫부분은 앵그르의 세계다. 국왕이 프랑스를 바치는 것처럼 화가는 자신의 예술을 라파엘로에게 바치는 셈이고, 또한 성모에게 헌정하며 성모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화와 역사화를 결합한 대작 속에 예술가로서 화가의 의도가 녹아든 것을 엿볼 수 있다.
성모자의 이미지는 예수가 신의 아들인 동시에 인간이기도 하다는 점을 나타낸다. 성모 마리아는 인간이지만 ‘신의 어머니’로서 추앙받으며 신과 인간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 신성과 세속을 연결하는 성모자의 이미지는 그만큼 거룩하고도 친근한 이미지로서 현실의 다양한 목적을 기원하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현재의 영광이 영원하기를 소망한다면 신성한 힘과 무한한 모성에 호소하는 것만큼 확실한 보증이 또 있을까?

지난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