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는 구글 계열사 딥마인드(DeepMind)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다. 2016년 2월 유럽 바둑 챔피언인 중국계 판후이 프로 2단과의 다섯 차례 대국에서 5:0으로 이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구글은 바둑계 세계 최고수로 꼽히는 이세돌 9단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대국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세돌 9단이 이길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그러나 알파고가 내리 세 판 불계승을 거뒀다. 구글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의 바둑 대결 이벤트를 펼쳐 톡톡히 재미를 봤다. 바둑에서도 인간 최강자를 이김으로써 인공지능 산업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딥마인드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는 트위터에 ‘이겼다! (알파고를) 달에 착륙시켰다’란 글을 올렸고,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전문가들은 10년쯤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반면 한국인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 최고수가 내리 세 판 돌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바둑 대결의 최대 수혜자는 구글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 전 국민이 인공지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됐고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됐다. 알파고가 ‘창업을 통한 혁신 사례’란 점에서는 창업계에도 큰 울림을 남겼다.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는 2010년에 영국 런던에서 출범한 인공지능 관련 기업이다. 전자상거래와 게임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고 인간처럼 생각하는 컴퓨터를 개발하는 게 목표였다. 2014년에 구글이 인수했는데 4억 파운드(6천700억 원)를 지불했다고 알려졌다.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가 딥마인드 인수를 진두지휘했다. 2012년에는 페이스북도 딥마인드를 인수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딥마인드 창업자인 데미스 하사비스는 인공지능 전문가로 게임과도 인연이 많았다. 어린 시절에는 ‘체스 천재’란 말을 듣기도 했다. 20대 초반에는 라이언 헤드 스튜디오에 입사해 일했고 엘릭시어 스튜디어라는 게임 개발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이 게임 개발사가 성공하지 못하자 학교로 돌아가 30대 초반인 2009년, 인지 신경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듬해 딥마인드를 설립했다. 두 번째 창업이었다.

구글이 딥마인드를 인수한 뒤 알파고를 개발해 이세돌을 꺾은 ‘사건’은 창업계의 시각에서 보면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 번째는 창업을 통한 혁신의 중요성이다. 하사비스는 인공지능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딥마인드를 설립해 구글 등 인공지능 분야 메이저 기업들과 경쟁을 벌였다. 바로 그 경쟁 상대였던 구글이 설립 4년도 안 된 신생기업을 6천700억 원이나 주고 인수했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 산업계에는 지금 이런 성공 사례가 절실히 필요하다. 우수 인재들이 창업해 큰돈을 받고 대기업에 회사를 매각한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 최근에 실현된 ‘창업 대박’을 꼽으라면 ‘카카오’가 ‘김기사’를 626억 원에 인수한 정도가 거의 전부다. 이보다 큰 규모의 스타트업 인수합병(M&A) 사례가 많이 나와야 우수 인재들이 창업전선에 뛰어들게 되고 딥마인드 같은 우수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다.

두 번째는 알파고의 출현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상생 선순환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줬다. 딥마인드가 구글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채 독자적으로 알파고를 개발했더라도 좋은 결과가 나왔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구글이 인수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구글은 딥마인드를 인수하기 전에도 인공지능 분야 강자였고 딥마인드 인수 후에는 인공지능 전문가들을 더 채용해 딥마인드 인력을 강화했다.
구글이 딥마인드만 인수한 것은 아니다. 거의 매월 스타트업을 한두 개씩 인수해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용했다. 딥마인드를 인수한 2014년에만 잿팩, 다크블루랩스, 비전팩토리 등 인공지능 관련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2013년에는 개 모양의 로봇 ‘빅독’으로 유명한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비롯해 오토푸스, 봇앤돌리, 인더스트리얼퍼셉션, 메카로보틱스 등 로봇 스타트업들을 많이 인수했다.
구글의 스타트업 인수는 구글 제품과 서비스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2005년에는 모바일 운영체제(OS)를 개발한 안드로이드를 인수했고 2년 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자 OS를 개방해 지금까지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해 로봇 분야에서 최강자로 떠올랐고, 2014년에는 딥마인드를 인수해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한층 강화했다.
한국에 비슷한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06년 NHN(현재 네이버)은 기술력을 갖춘 검색엔진 개발사 ‘첫눈’을 350억 원에 인수했다. 그 덕에 네이버 검색엔진이 강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첫눈 개발자들이 일본에서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개발했고 그 라인이 지금 NHN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첫눈 창업자는 매각대금으로 본앤젤스라는 벤처 투자사를 설립해 창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아직도 좋은 스타트업을 인수해 혁신하는 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잘 모르거나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 서비스를 모방하거나 인재를 스카우트하는 게 당연하다는 풍토가 여전히 남아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제값 주고 좋은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게 입증됐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인식이 부족하다. 이번에 알파고가 영국 스타트업 프로그램이고 그 스타트업을 구글이 인수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만큼 이제는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바둑 대결 이벤트를 계기로 게임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길 기대한다. 딥마인드 창업자인 하사비스는 어린 시절 게임을 즐겼고 10대 후반에 게임 개발사를 창업했다. 그런 관심과 기술력으로 인공지능을 공부해 딥마인드를 세웠다. 한국은 한때 ‘온라인 게임 종주국’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2006년 사행성 게임의 파문이 터진 후 게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강해졌고 “게임은 마약”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img src="/201604/images/sub/section05_3_name04.gif" alt="은행·증권 분야에서도 ‘인공지능 혁명’ 바람 주식 투자 조언하는 로보어드바이저는 출발점" />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은 인공지능이 금융 분야에서도 혁명을 몰고 올 것을 예고했다. 알파고 만큼 강력한 인공지능을 탑재한 컴퓨터라면 최고의 증권 애널리스트를 꺾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주식 투자 수익률을 예측하고 투자 조언을 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가 그 일례다.
국내에서도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했거나 도입하려고 검토 중인 금융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쿼터백, 에임(AIM), 데이터앤애널리틱스(DNA), NH투자증권 등은 개발을 끝내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한은행은 DNA와 제휴해 로보어드바이저 모델을 만들기로 했으며 로보어드바이저 알고리즘을 탑재한 펀드 추천서비스 베타 버전을 곧 내놓을 예정이다. 삼성증권은 올해 중반쯤 자체 개발한 로보어드바이저를 내놓는다.
은행과 증권사들이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하기 시작하면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가령 로봇이 자금운용을 맡으면 이 분야 담당자 중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고 남은 인력도 로봇의 지시를 따르는 일만 하게 될 수 있다. 영업점 통폐합도 가속화될 수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인공지능이 증권 분야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인간보다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고 투자자들은 점점 더 로봇 투자를 선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서 승패를 두고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알파고가 우리에게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일깨워줬다는 점이다. 창업과 관련해서는 스타트업을 위한 혁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상생 선순환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이번 바둑 대결을 계기로 한국이 인공지능 선진국이 되고 창업대국으로 도약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