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20세기 초반, 영국 데번주의 작은 농촌 마을. 보어전쟁 참전용사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젊은 청년 앨버트 내러컷(제레미 어바인 분)은 옆 농장에 새로 태어난 망아지 조이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가난한 살림에 비싼 말을 산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라 늘 바라만 보던 중, 아버지가 말 시장에서 터무니없는 비싼 값에 조이를 사오게 된다. 하지만 시가의 세 배나 주고 거칠고 조련도 안 된 조이를 사온 것에 어머니는 경악하고 곧이어 쟁기질도 못하는 조이를 아버지는 홧김에 쏴 죽이려고 한다. 그 사이를 막아선 앨버트는 애정과 헌신을 다해 조이와 교감하고, 결국 조이와 함께 다른 경험 많은 말들도 포기한 척박한 황무지를 개간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어렵게 개간한 밭이 폭풍을 만나 농사를 망치게 되고, 빚을 갚아야 하는 아버지는 조이에 대한 앨버트의 애정을 알면서도 때마침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많은 군마가 필요해진 군 기병대에 조이를 몰래 팔고 만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흥행의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워 호스>는 ‘말’이 주인공이라는 특이한 소재의 영화이다. 개봉 당시 할리우드에서는 스필버그 감독이 이미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전쟁 영화의 한 획을 그었던 만큼, 새로운 전쟁 영화는 또 어떤 이야기일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하지만 결과로 나온 건 의외로 말이 주인공인 <워 호스>였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만큼의 스펙터클한 감동은 없지만, 그래도 평화롭게 살다가 의도하지 않은 전쟁에 던져진 말들과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쓰러져 간 인간의 교감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전쟁의 민낯이 적절하게 표현됐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라 불리는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계 경제 질서가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되고 나서 벌어진 첫 대규모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자본주의는 같은 자본주의라 해도 현재와는 접근 방식부터가 달랐다. 학자들은 이를 구별하기 위해 당시의 자본주의시스템을 독점 자본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독점 자본주의는 당시 열강들이 강한 국력으로 타 세력을 굴복시켜 경제적 독점을 누리던 정치적 체계인 제국주의와 결합된 일종의 탐욕적인 자본주의였다. 강력한 국가들이 탐욕스럽게 양적으로만 팽창을 하다 보니 결국 타 세력과 충돌하게 되고, 이렇게 조성된 힘과 힘의 알력이 결국 밖으로 터져 나왔으며 그것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결과만 놓고 보면 총 4년 3개월 14일 동안의 전쟁 기간 중 영국·프랑스와 미국·러시아 등의 연합군과 독일·오스트리아 등의 동맹군을 모두 합해 총 7천8백만 명 이상의 병력이 동원됐고, 민간인을 제외한 군인들의 사상자만 양군 합해 3천8백만 명에 달하는 인류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가 힘든 전쟁이었다.

흔히 전쟁은 ‘머릿수’라고 한다.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무조건 많은 병력으로 적을 압도하고, 처절한 백병전으로 적을 살육하는 것이 전쟁 승리의 정석이었다. 그러다보니 위급한 상황이 되면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서 아무 훈련도 받지 못한 민간인들을 징집해 전장에 세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징집은 각 영지의 영주들에 의해 아주 제한적으로 이루어졌고, 당시 중세 봉건국가에서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의 숫자는 전 국민의 0.5%에 불과했다. 영주들이 징집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신하인 영주의 입장에서 보면 국왕의 명에 의해 징집을 하긴 해야 하는데 결국 이는 자기 영지의 중요한 노동력을 소모하는 행동이며, 이로 인해 영지의 전체 생산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를 고려해 과거 대부분의 전쟁은 농사를 짓지 않는 농번기에 많이 이루어지곤 했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와 봉건제가 약해지고, 중앙집권형의 왕권 강화가 이루어지면서, 병력을 각 영지의 영주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중앙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국가 상비군 체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특히 소총과 대포 같은 화약 무기의 발달로 전쟁의 양상이 ‘머릿수’ 보다는 군대의 무기 숙련도와 훈련도가 중요해지기 시작하면서, 전쟁은 전문적인 군인들이 수행하는 직업적 행동이 돼갔다. 그러다보니 20세기 초반까지 사람들의 생각에 전쟁은 ‘군인’들의 것이었고, 매일 신문을 통해서 전해지는 전쟁의 모습은 ‘프로 스포츠 경기’ 같은 모습이었다. 전쟁은 전투지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고,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은 가끔 적에게 점령당해 약탈 같은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있었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물론 전쟁 상황이 되고 병력이 부족할 경우 민간인들을 징집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부분 자원자에 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전쟁의 양상을 180도 바꿔놓는다. 바로 전방과 후방이 따로 없는 이른바 총력전과 소모전의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당시 전쟁은 군인들만의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스포츠 경기를 보듯 열광하다가 점점 전쟁이 진행되면서 자신의 생활이 전쟁 속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자 하나둘 전쟁의 참상에 경악하게 된다. 영화 <워 호스>에도 전쟁 발발 소식과 함께 애국심에 넘치는 많은 민간인 청년들이 망설임 없이 군대에 자원하는 모습이나 출병하는 군인들이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는 느낌으로 웃으면서 배웅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당시에는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날 독점 자본주의 경제시스템하의 전쟁은 지금까지 겪어왔던 전쟁이 아니었다.
영국군 기병대의 군마로 팔려간 조이가 처음 참전한 전투 역시 지금까지의 전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조이가 소속된 영국군 기병대는 말의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 적에게 돌진 분쇄하는 기병 돌격이 주요 전술로 자리 잡은 군대로, 말이 전쟁에 활용되기 시작한 고대로부터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와 1차 대전 이전까지는 유럽 대부분 군대들의 표준 전술이었다. 그래서 말의 강인함과 속도가 중요하게 작용했고, 기병대의 말들은 기병의 분신으로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다뤄졌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는 수천 년을 이어온 이 전술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영화 초반 독일군을 기습 공격하는 영국군은 기병 돌격으로 적을 혼란에 빠뜨리지만, 곧 최신 기술의 산물인 기관총 공격에 조이의 기수를 포함,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다. 지금까지의 기병 전술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말은 전장에서 사료나 축내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대포나 물자를 끄는 짐말로 용도가 바뀌게 된다. 기술의 진보로 인해 짐말로 전락한 말들의 운명은 가혹했다. 채찍을 맞아가며 엄청나게 무거운 대포나 물자를 끄는 말들은 부상당하기가 쉬웠고, 이렇게 부상당한 말은 치료를 받기보다는 소모품처럼 바로 죽임을 당하고 폐기처분 되었다. 하지만 이런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조이는 주인의 염원에 응하기라도 하듯 꿋꿋이 살아남아 기적과도 같이 주인 앨버트를 전장에서 만나게 된다. 이 영화가 보는 이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모든 인간성이 말살된 전쟁터에서 촛불처럼 흔들리면서도 꺼지지 않는 휴머니즘이다.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방금까지 총부리를 겨눴던 적에게, 말 못하는 동물에게 베푸는 평범한 그 시대 사람들의 작은 휴머니즘은 세상의 종말 같았던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시대를 거슬러 지금의 우리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은 모든 것이 생산 활동에서 시작되는 보편적인 경제시스템과는 상극의 개념이었다. 전쟁을 경제시스템에 놓고 생각하면, 전쟁에서의 ‘생산’은 무력으로 적의 재화를 강탈하는 것이고, 이는 생산과 교환을 통해 쌍방의 부(富)에 플러스가 되는 경제시스템과는 달리 한쪽이 얻으면 한쪽은 잃게 되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에 가까웠다. 그러다보니 전쟁에 임하는 집단들은 전쟁에 필요한 자원이나 물자를 풍족하게 쓰기보다는 전쟁에 소요되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모든 전략과 전술을 집중했다. 그래서 전투 지역도 그렇게 넓지 않고, 군대의 숫자도 많지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대량생산이 가능한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하에서는 전쟁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생산이 느는 효과가 있다. 물량이 받쳐주기 때문에 이에 따른 전략과 전술도 다양해질 수 있었고, 무엇보다 많은 군대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병참이나 보급이 획기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거리상의 문제로 제한적으로 유지됐던 전선도 무한정 넓어지고, 이렇게 무한정 넓어진 전선은 양측 모두 깊게 파둔 참호를 따라 몇천 킬로미터 이상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각종 자재와 군마들뿐만 아니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불과 몇백 미터의 땅을 빼앗기 위해 몇백 명씩 희생하는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그렇게 힘들어 뺏은 땅도 며칠 뒤면 다시 상대측 몇백 명의 희생 끝에 빼앗기곤 했다. 이처럼 무의미한 총력전과 소모전이 계속돼도 독점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은 인간의 피와 땀을 원료로 하듯 왕성한 생산시스템을 가동해, 다시 다음 주면 새로운 병력과 물자를 끝이 보이지 않게 길게 늘어진 전선의 곳곳에 공급했고, 이렇게 공급된 병력과 물자는 다시 무의미한 몇뼘 안 되는 땅을 빼앗는 데 투입됐다.
영화 <워 호스>의 대사나 여러 기록들을 보면 당시 사람들도 과거와는 다른 전쟁의 양상을 보고 무의미한 전쟁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만일 중세시대였다면, 씨를 뿌리는 계절이 되면 서로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평화조약으로 갔을 전쟁이 4년까지 길어진 것은 전쟁을 통해 오히려 총 공업 생산량이 늘어나 국가의 외형적인 부가 늘어난다는 독점 자본주의가 낳은 아이러니한 현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숫자와 허상에 불과할 뿐 실물경제는 전쟁으로 인해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망가져 갈 뿐이었다. 그래서 현대의 전쟁은 전면전을 지향하고, 정말 불가피할 경우에도 국지전이나 제한적인 전쟁으로 수행하는 것도 전면전이 경제시스템을 그 근본부터 파괴한다는 것을 20세기에 있었던 두 번의 비극으로 뼛속 깊이 배웠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 세계를 전화 속으로 몰아넣었던 제국주의와 낡은 독점 자본주의 역시 종말을 고하게 된다. 팽창 위주의 시장을 견제하기 위한 규칙을 만들고, 현 국제연합의 전신인 국제연맹 같은 조직을 통해 현대적인 개념의 국가 간 협약들을 맺어 무분별한 확장과 팽창을 서로가 견제할 수 있게끔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20년 뒤 또 다른 비극적인 전쟁을 맞이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인류의 노력들이 계속 이어져 지금까지 이르고 있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더 좋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