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토빈 교수는 ‘포트폴리오(Portfolio) 이론’ 으로 198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화폐수요의 연결고리를 밝힌 이 이론에 대해 당시 기자들은 “대체 어떤 내용이냐?”고 질문했다. 확률적 이론을 통해 경제주체들의 자산포트폴리오 선택과 화폐수요를 추정하는 복잡한 연구내용에 대해 토빈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간단히 정리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당시 미국 신문에는 “토빈 교수,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이론으로 노벨상 수상”이라고 실렸다.
미국인에게 네스트 에그(Nest egg)는 장래를 위해 열심히 모아둔 쌈짓돈을 의미한다. 어렵게 모은 그 달걀(쌈짓돈)을 한 바구니에 담았다가 자칫 바구니를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큰일이 나지 않겠는가? 그러니 달걀(자산)은 여러 바구니에 나누어 담으라는(여러 곳에 분산해서 투자하라는) 쉬운 비유를 했던 것. 기자들과 미국 국민들은 그의 포트폴리오 이론의 의미를 금방 이해했다고 한다.
복잡한 이론을 동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각 경제주체, 즉 가계나 기업이 각자의 상황이나 선호·위험에 대한 태도 등에 따라 보유하는 자산의 비율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각자의 포트폴리오 선택에 따라 부동산 등 실물자산과 금융자산, 부채 등의 보유비중이 달라질 것이며 금융자산 가운데서도 예·적금, 채권, 주식 등의 비중이 달라질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급격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다.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20대 초반부터 수십 년 동안 노후준비를 하려면 자산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초반에 잘 결정하는 것이 개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중요해진다. 자산 포트폴리오 선택의 결과 노후에 평생 받게 될 연금의 액수가 결정될 것이며 금융자산의 포트폴리오 선택이 금융시장을 변화시킬 것이다. 당연히 실물부문에도 영향을 미쳐 국가의 거시경제도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모든 것이 확실한 세상에 살고 있다면 자산의 포트폴리오 선택에 전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당장 오늘 저녁에 비가 올 것인지 오지 않을 것인지를 모르고 내일 미세먼지가 심할지 아닐지를 알 수 없다. 일주일 후 바로 오늘, 우산을 가지고 나가야 할지 마스크를 준비해야 할지는 더더욱 모른다. 하물며 30년 이상을 준비해야 하는 장기 생애재무설계를 할 때 불확실성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자산 포트폴리오 선택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불확실한 세상에서 개인이 생애재무설계를 할 때 장래 기대효용이 최대치가 되려면 어떤 기준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가장 중요한 키워드(Key Words)는 유동성과 수익성, 안전성 이 세 가지이다. 이를 적정하게 고려해서 포트폴리오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
원금을 손해 보지 않는 안전성이 중요할 것이고 갑작스럽게 집안에 일이 생겨서 현금화하더라도 별로 손해를 보지 않도록 유동성이 높은 금융상품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또한 장기간에 걸친 생애재무설계이므로 가능한 높은 수익성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이 수익성에 반갑지 않은 동반자가 있다는 점이다. 위험(Risk)이라는 동반자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야누스 신(神)이 한 면의 얼굴은 평화인데 바로 그 뒷면은 전쟁인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가진 것처럼 수익성이 높은 자산은 예외 없이 높은 위험을 동반하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안전한 자산은 수익성이 높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예전에는 개인이 안전자산을 선택할 때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별문제가 없었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절이라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많아 돈을 빌려가면서 비교적 높은 이자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가지고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부동산 거래가 얼어붙으면서 주택 관련 대출도 하락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수신을 해봐야 운용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고객이 맡긴 예금과 적금에 대해서도 높은 이자를 줄 수가 없다. 초저금리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부지런히 저축하여 예·적금에 들어도 이자가 기대보다 낮다보니 가계 입장에서는 “이렇게 낮은 이자를 받아 어느 세월에 목표하는 수익을 낼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생기게 된다. 그 걱정의 틈을 파고드는 것이 위험성향의 투자다. 원래는 안전자산 위주의 위험회피 성향이었던 사람들까지도 저금리 시대에 들면서 갑자기 위험에 대한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적정 수익률을 내기 위해서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위험선호로 성향이 돌변하는 것이다.
문제는 금융소비자들이 금융상품의 내용을 잘 모르거나 향후 금융시장의 분위기가 어떻게 변할지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고수익 - 고위험 투자상품에 집중 투자해 예기치 못한 손해에 직면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저축은행 후순위채 투자가 그랬고 환율의 변동성을 노린 키코(KIKO)가 그랬다. 한때는 브라질 채권만 사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 적도 있었다. 단기간에 은행 적금 이자의 세 배 이상을 준다는 CP에 투자했다가 크게 손해를 본 사람들도 많았다.

이 같은 위험투자성향은 낙관적인 분위기를 틈타는 경우가 많다. 올해 초 들어 갑자기 대규모 투자손실 문제가 불거진 홍콩 H지수 기반 ELS(Equity Linked Security : 주가연계증권)가 낙관적 중국 붐에 편승한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중국은 ‘기울어가는 자본주의 시장을 되살릴 유일한 구원투수’처럼 묘사됐다. 중국경제는 연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거듭했고 심지어 ‘위안화가 미국 달러화를 넘어서는 기축통화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적어도 가까운 시일 안에 지금처럼 급격히 중국경제가 나빠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러한 낙관론, 중국경제 불패론에 도취돼 중국증시에 상장된 주식들을 기반으로 한 홍콩 H지수 ELS에 투자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지수가 지난해 5월 26일 최고치(1만 4천962선)를 찍은 후 계속 하락해 올해 들어 8천선 밑으로 50% 가량 주저앉았다. 당연히 여기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은 손해를 보게 됐다.
ELS 가운데서도 주가가 일정 선 이내에서 움직일 때는 괜찮다가도 크게 폭락하면 옵션구조가 발동하게 설계되어 있는 낙인(Knock In)구조 ELS에 투자한 사람들은 더 큰 손해를 보게 되었다. ELS 만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므로 실제 어떤 결과가 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지만 자신이 보유한 금융자산을 낙인구조의 ELS 상품에 집중 투자한 사람들은 지금쯤 속이 타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ELS는 마니아층이 두텁다. 전체 금융자산의 절반 이상을 ELS에 넣는 투자자들이 수만 명에 달한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왜 그럴까? 실제 ELS에 투자한 사람들은 과거 주가가 횡보현상을 보이거나 오르는 시점에 투자했다가 단기간에 상당한 수익을 거두는 경험을 되풀이 한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몇 번의 성공을 거듭하다보면 점점 투자 불패(不敗)의 고양감에 도취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짧은 기간에 거두는 높은 수익률에 내재된 위험이라는 다른 얼굴을 깜박 잊어버리고 안전성의 교훈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토빈 교수의 충고와 반대로 달걀을 한 바구니에 듬뿍 담는다. 위험성이 상당히 있는 금융상품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홍콩 H지수에는 투자자들이 잘 알지 못하는 추가적인 변동성 위험이 내재돼 있었다. 사람들은 여러 주식을 모아 가중치를 낸 지수(Index)가 포트폴리오 구성이 잘 돼 있어서 훨씬 변동성 위험이 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홍콩 H지수의 경우 구성 종목이 40여 개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시가총액의 70% 이상이 금융업종에 치우쳐 있다. 업종별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이 간과된 것이다.

그렇다면 초저금리 시대에 ‘고수익과 고위험이라는 모순’에 직면했을 때 가계가 적정 생애재무설계를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엇일까?
우선 자신이 잘 모르는 금융상품은 선택하지 않는 편이 좋다. 고위험 투자자산은 복잡한 구조와 형태를 지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낯선 파생상품에 대한 글로벌 금융투자의 경우 투자 전문가들조차도 내재된 위험의 특성이나 위험의 크기, 범위, 파급효과 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발생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핵폭탄을 터지게 만든 신용파생상품들이 그랬다. 미국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미국 내 수많은 부실 모기지 자산을 기초로 해서 증권화시키고 그 증권을 다시 조각조각 수십 가지 트란쉐(Tranche : 조각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증권유동화 상품에 쓰이는 용어이다)로 분해해 각각에 대해 신용보강을 한 후 신용평가사들로 부터 트리플 A 등급을 받아 글로벌 금융시장에 판매했다. 다른 나라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트리플 A 등급의 초우량 증권을 산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초저금리 시대에 예·적금 같은 안전자산에만 100% 맡기라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초저금리인데다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야하는 사람들에게 안전성과 수익성 간의 포트폴리오는 7대 3이나 8대 2정도가 좋다. 특히 가계나 개인이 생애재무설계를 해나가기 위한 목적으로 가입하는 연금 등은 안전자산으로 70~80% 이상을 구성하고 남은 20~30%로 중위험·중수익 자산에 배분하는 포트폴리오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낙관적인 붐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 특정 금융상품에 대해 모두가 낙관적인 말을 할 때는 오히려 경계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마지막으로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줄여야 한다. 한국인의 경우 과거의 부동산 불패신화에 사로잡혀 부동산이 개인 자산의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에 올인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처럼 부동산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그러니 노후를 위해 부동산 투자를 하려고 생각한다면 집에 있는 거울 속 자신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물어보자. “거울아 거울아, 내가 족집게처럼 잘되는 부동산 투자를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일까, 아닐까?”
거울이 아무 대답 없이 침묵하거든 부동산 자산을 줄이고 유동성 있는 금융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기울이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