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의 진정성 있는 사회적 책무 > Vol 744 Mar 2016 > 금융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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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기업의 진정성 있는 사회적 책무

기업이 사회에 대해 행해야 할 사회적 책무 이행의 전제조건은 기업이 사회의 복리를 침해하는 죄가 있는지, 이 죄에 대해서 용서를 받았는지의 문제에서 시작된다. 경영자가 회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사회에 채무를 가지고 있거나 죄를 지었을 경우, 이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지 않는 한 이 경영자의 향후 사회를 향한 모든 호혜적 행동은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 절하된다. 과거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아무리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해도 이 기여는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물의를 일으킨 기업이 설사 청년고용을 몇만 명 늘린다고 공표를 해도 자신의 입장을 모면하고 회피하려는 행동으로 해석될 여지가 높지, 진정성 있는 경영행동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카네기와 록펠러도 한때는 미숙하기 짝이 없는 경영자였다.
이들의 노조탄압 때문에 군대가 동원되기도 하고 진압과정에서 사람들이 사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을 악덕 기업주로 기억하기보다는 진정성 있는 경영자로 기억한다. 자신의 잘못을 허심탄회하게 자백하고 미숙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만회하기 위해서 묵묵히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은 미숙한 자신을 구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뱀이 성장하기 위해서 자신의 허물을 완벽하게 벗어내는 과정이 전제돼야 하듯이, 사람이나 기업은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자백하고 용서받는 과정을 통해 학습하고 성장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판가름은 잘못과 죄를 저지른 다음의 행동들에 의해서 판명된다. 자백과 용서의 과정을 통해서만 조직과 사람들은 더 성숙한 모습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잘못과 실수를 저지른 뒤 성장하지 못하는 기업이나 사람은 허물을 벗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고 감추는 데 혈안이 돼 있고, 이 잘못이 남들에 의해 밝혀질 때까지 문제를 덮기 위한 행동을 한다. 성장하지 못하는 기업의 경영자는 허물을 벗어내는 자기 성찰에 대한 매듭이 없다.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스스로가 학습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자백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더 성숙하게 회사를 이끌어서 미숙했던 자신을 용서받는 것이다. 설사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구성원이 한 잘못이라 하더라도 경영자가 책임을 지고 용서를 구하는 행동이 경영자의 경영행위를 더 진정성 있게 만들어준다. 반대로 허물을 벗어내는 프로세스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죄를 변명하고 숨기기 위한 행동은 오히려 진정성 없는 경영자로 낙인찍히는 첫걸음이다. 자신의 죄에 대해 자백하고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어떤 행위도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한 진정성 없는 연기로 간주될 것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행동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허물을 허심탄회하게 벗어내는 문제가 정리된 다음 단계에서 기업의 도전과제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은 조직생태계를 위해 조직의 사명을 실천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사명은 세상에 꼭 존재해야만 하는 신성한 이유다.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까닭도 따지고 보면 사명을 표현하고 규명하는 실현과정이다. 사회적 책임활동은 고객이나 종업원을 넘어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또 다른 참여자들에게 이 사명을 전달하고 실천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사회적 책임활동은 이들에게 회사가 가진 사명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디자인돼야 하고 이것은 초일류기업 경영인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이다.
캐롤(Carroll)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의 수준을 경제적·법적·윤리적·박애적 등의 4단계로 나누고 있다.¹ 경제적 단계의 사회적 책임은 최소한 평균 이상의 임금을 주어 종업원의 생계를 책임지고, 사회적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법적 책임은 사회적 맥락에 법적 손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을 말한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폐수나 기름을 유출하지 않는 것처럼 법으로 정한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윤리적 책임은 법으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회사와 사회와의 암묵적 계약을 지켜나가는 행동을 말한다. 종업원이나 납품업자 등 기업의 이해당사자들에게 공정한 계약을 지켜나간다든지, 환경을 보존한다든지, 시민들의 기본권을 존중한다든지,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등의 행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시민들의 기본권이나 환경을 지키려는 적극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의 단계가 수동적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이라면 마지막 박애적 단계는 회사가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의 일환으로, 자발적으로 본인들의 선택에 의해서 생태계의 복원에 공헌하는 행동을 말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생태계를 위해서 자신의 역량을 기부한다든지, 노동력을 제공한다든지,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것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도 아무도 윤리적이지 않다고 비난하지 않지만 기업이 스스로 자신의 사명에 근거해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시민행동이다.

1 A.B. Carroll. (1979). A Three-Dimensional Conceptual Model of Corporate Social Performance,'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4: 497-505; A.B. Carroll (1987). In Search of the Moral Manager. Business Horizons, pp. 7-15.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프리드먼(Friedman)은 윤리적인 관습이나 법제화된 사회적 규범에 충실하면서 가능한 많은 부를 축적하는 활동이 기업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² 프리드먼의 입장에서 보면 기업이 경제적·법적·윤리적 책임을 준수하는 것은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지만 박애적 단계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입장은 대부분의 기업 활동이 공동체의 생태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기업은 생태계의 일원으로 존경받을 때만 영속적으로 이윤을 추구할 수 있다. 단순한 이윤추구를 넘어서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인 사명을 명료하게 설파할 수 있을 때 생태계의 구성원들로부터 지지와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박애적 단계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통해서만 기업은 자신의 사명을 구성원들에게 정확하고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설파할 수 있다.
시장의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CEO들은 박애적이라는 말을 재무적인 것으로 잘못 해석한다. 하지만 진정한 박애적 단계는 재무적인 수준을 넘어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기업의 존재가치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수재의연금이나 장학금을 낸다든지 하는 것만으로 박애적 단계를 실천한다고 생각하는 기업은 회사의 존재 이유인 사명이 없거나 플라스틱 사명으로 죽어 있는 회사이다. 박애적 단계의 기여활동은 기업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나 재화를 경제적·사회적 이유로 이용할 수 없는 생태계의 소외된 구성원들에게, 이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비교적 단순한 행동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교가 운동선수들에게 눈높이 교육을 시켜주는 것이라든지, 현대카드가 서울역 버스승강장을 디자인해서 기부하는 행동 등은 좋은 사회적 책임활동의 대표적 예라고 볼 수 있다. 대교의 가장 큰 강점은 ‘눈높이 교육’이다. 학생이지만 교육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소외된 운동선수들에게 회사의 대표적 역량이라고 볼 수 있는 눈높이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자신들의 핵심고객을 제2금융권을 이용하는 서민이라고 정의하고, 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버스정류장에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디자인 역량을 발휘해 보다 세련된 문화적 취향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CEO들이 사회적 책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런 행동이 궁극적으로 회사의 재무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들은 또한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경쟁사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또는 경제적·법적·윤리적 책임을 면하기 위해, 회사의 이미지를 제고해 판매를 늘리기 위해, 혹은 주가나 재무적 자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사회적 책임활동을 한다. 많은 연구들이 CEO가 단지 수단적 이유로 사회적 책무활동에 몰입한다면 이런 관행은 장기적으로 회사의 재무적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회사들은 아무리 사회적 책임활동에 매진하더라도 구성원과 고객들은 이들의 활동을 블랙기업 활동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2 M. Friedman.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 New York Times. September 13 1970, pp. 122-126.

최근에 사회적 책임활동을 생태계의 광범위한 참여자들의 관점에서 정의하려는 연구들이 프리드먼(Freeman)을 중심으로 제시되고 있다.³ 참여자의 관점은 누구를, 왜 회사의 이해관계자로 정의할 수 있는지의 논쟁이다. 지금까지의 전통적 이해관계자는 종업원·주주·고객·경영진·공급업자를 중심으로 논의됐다. 하지만 참여자 관점의 사회적 책임활동은 이 이해관계자의 외연이 이보다 더 확대되어야 제대로 된 사회적 책임활동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정부·정치단체·노동조합·각종 협회·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회사와 기관들·미래의 종업원·미래의 잠재고객·일반 시민·경쟁자까지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비즈니스 생태계의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는 구성원 전체가 이해관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생태계에서 플랫폼을 공유하는 참여자 간 협업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활동을 전개시킨 대표적 사례로 미국 화장품 회사인 에스티 로더의 핑크리본 캠페인을 들 수 있다. 핑크리본 캠페인은 1992년 여성들의 유방암에 대한 인식고취와 조기검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 기획됐다. 처음에는 자사 고객을 중심으로 핑크리본과 자가 진단카드를 나눠주는 것으로 시작됐지만 2010년에는 70여 국에서 1억 1천만 개 이상의 핑크리본이 배포됐고, 에스티 로더의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는 식품·의류·항공사 등 다양한 협력 기업들에까지 확대됐다. 이 기업들은 자사의 상품과 서비스에 핑크리본을 부착하고 여기서 얻어진 수입은 여성의 건강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유방암 연구재단의 연구기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기부금만 해도 지금까지 4천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대표적으로 여성의류업체인 앤 클라인은 핑크리본 캐시미어 스웨터를 선보여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기부목표액인 2만 5천 달러를 초과달성했다. 3M에서는 포스트잇을 핑크제품으로 출시하고, 캠벨도 수프를 출시했다. 델타항공은 비행기를 핑크색으로 장식하고 핑크색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이 핑크색 레모네이드를 서비스하는 캠페인을 통해 전 세계 70여 개 국가, 20억 명 이상의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처음부터 이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에스티 로더는 사회적 책무에 조직생태계를 염두에 둔 덕택에 엄청난 명성을 축적했다. 아마 이것을 자사의 상품 브랜드 가치로 환산한다면 그 가격은 추정할 수 �坪� 정도일 것이다. 이처럼 세계적 초일류 기업들은 부를 쫓아가기 위해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통해 자신의 경영철학을 실현한 결과로 엄청난 부를 덤으로 수여받는다.

3 Phillips, R., Robert & Edward Freeman (2003). Stakeholder Theory and Organizational Ethics. Berrett-Koehler Publishers.

※ 필자의 글은 전국은행연합회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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