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월드컵공원이 지척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여유로움이 풍기는 마포구 상암동. 보폭을 좁혀오는 봄의 기척은 공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그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냈다. 공원으로 향하는 지그재그 모양의 산책로에는 봄 마중 나온 이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모름지기 마음은 이런 풍경만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서서히 이완되며 힐링을 경험하게 되는 것. 느린 풍경을 이웃 삼은 민찬기 운동처방연구소 민찬기 소장은 운동이란, 이처럼 신체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넘어 내면에 닿아야 비로소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고 강조한다.

전남 여수에서 나고 자란 민찬기 운동처방연구소 민찬기 소장. 29년에 걸친 은행원 생활의 출발점도 다름 아닌 여수였다. 광주은행 여수지점이 첫 발령지였던 것. 시작은 여느 은행원과 다를 바 없이 지점 창구에서 맞았지만, 사실 그는 숫자와는 멀찍이 거리를 둔 은행원이었다.
"1975년 광주은행이 서울에 처음으로 지점을 개설하면서 대부분의 은행원 생활을 서울에서 했습니다. 서울분실 소속으로 이곳에서 승진을 거듭해 서울분실장까지 역임했죠."
광주은행 서울분실은 업무 특성으로만 봤을 때, 사령부와도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정부에서 금융 관련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면 기동력 있게 은행에 전달하는 것을 비롯해 증권거래소, 언론 등을 대상으로 한 대외업무에 주력했던 것. 그 또한 은행 본연의 업무보다는 항상 정부와 금융기관 등에 촉각을 곤두세운 채 일했다. 지점에서 근무하는 은행원이 주로 고객의 자산을 불리면서 동시에 은행의 속살을 채웠다면, 민찬기 소장은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은행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데 힘을 보탠 셈이다.
"29년 동안 일했으니, 생각해보면 성취감을 맛본 경험이 한둘이 아니죠. 그중에서도 광주에 백화점을 유치하는 데 한몫했다는 점이뿌듯하게 남아있는데요. 백화점을 유치하면 지역 상권이 살아나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게 되고, 결과적으로 은행도 성장하게 되니 열정을 아낄 이유가 없었죠."
일반적인 은행 업무와 동떨어지다보니 출퇴근 개념 없이 항상 시간에 쫓겨 다녔다는 민찬기 소장은 이로 말미암아 은행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의 재테크에는 손쓸 여력이 없었다고 말한다.
은행 일만으로도 하루가 빼곡하게 채워져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다. 때문에 IMF 여파로 2003년 명예퇴직 명단에 올랐을 때, 그와 가족의 삶은 이내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29년 동안 오직 은행만 생각하며 일해 온 그에게 새로운 삶을 꾸려나갈 무대는 요원하기만 했다. 총천연색으로 펼쳐졌던 삶이 한순간에 암전되는 느낌이랄까. 은행 경영실적 악화에 따른 대규모 구조조정의 파도에 휩쓸려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민찬기 소장에게 현실은 냉혹하기만 했다.

"퇴직 당시 두 아들은 각기 고1, 중3이었어요. 퇴직금마저 변변치 않아 한창 공부할 때인 두 아들의 학원 수강부터 중단시켜야 했죠. 후두암을 앓던 아버님께도 용돈은커녕 치료비조차 드릴 수 없는 암담한 생활이 시작된 겁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그는 생계를 위해 숱한 구직 사이트와 신문을 뒤지고 다녔다. 은행원 경력 29년은 특별한 기술로 쌓은 커리어가 아니었기에 재취업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쩌다 그를 반기는 건 은행원 출신이라는 이점을 이용하려는 도산 위기의 중소기업이나 다단계판매회사가 전부였다.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친구가 경영하는 물탱크회사에 영업직으로 취업한 적도 있었다. 직접 트럭을 운전하며 현장 경험을 쌓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도무지 삶의 안정과 행복감을 맛볼 수 없었다.
"생계 문제에 직면하다 보니, 일단은 밥벌이에 의미를 두었어요. 하지만 대부분 길게 이어지지가 않더군요. 내 안에 잠재된 거인을 꺼내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당장의 취업에만 급급한 게 문제였죠."
구직과 재취업의 반복된 사이클에서 지친 민찬기 소장은 오랜 고민 끝에 창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가장 먼저 그는 인생2막인 만큼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파악하고자 스스로를 향해 탐색기를 들이댔다. 이 과정 끝에 만난 것이 바로 ‘운동’이다.
사실 그는 학창시절, 취미로 한 유도로 도 대표까지 선발되는 등 운동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운동 마니아로, 은행원 시절은 물론 퇴직한 이후에도 꾸준히 운동을 벗삼아왔다. 다만, 그는 운동의 의미를 신체의 건강과 아름다움에만 가두지 않았다. 운동을 통해 신체의 균형과 건강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멘탈 피트니스’에 도달하는 기쁨에 무게를 둔 것이다. 이는 그가 창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운동의 참된 가치로, 창업 또한 이 뼈대에서 살을 붙여나갔다.
운도 따랐다. 마침 소상공인진흥원에서 실시하는 시니어창업스쿨 1기생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와 1인 창업을 지원해주는 컨설턴트 과정에 입관하게 된 것. 80시간에 걸친 창업 교육은 민찬기 운동처방연구소 창업에 적재적소의 양분을 제공해주었다. 덕분에 그는 2010년 12월, 오랜 방황과 시련 끝에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1인 창업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민찬기 운동처방연구소는 개인적인 경험과 꾸준한 공부를 통해 유아부터 시니어까지 개개인에게 적합한 운동 종류와 방법, 횟수 등을 처방해주는 지식사업이에요. 무엇보다 기업과 은행, 사회기관 등을 대상으로 활발한 강연을 펼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은퇴를 앞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잠재의식을 활용한 성공창업’ 프로그램은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해 더욱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민찬기 운동처방연구소를 꾸려나감과 동시에 꾸준히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개발해 특허 취득까지 마친 그는 조만간 또 다른 운동 테마로 창업설명회를 진행할 꿈에 부풀어있다. 이를 통해 진정한 창업이란 어떤 것인지 성공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는 민찬기 소장. 서울시교육청에서 주최하는 무료 건강 강연을 비롯해 재능기부 또한 활발히 하는 그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운동을 통해 멘탈 피트니스를 경험하게끔 하는 게 궁극적인 바람이라고 강조한다.